노선

      금산사 입구에서 머리들고 바라보면 “강천선사”라는 글발이 보이는데 이는청나라 강희황제가 태후를 동행하여 금산에 왔을때 친필로 쓴 글이다.강천사 즉 금산사는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선종의 고찰이다.동금시기 처음으로 건설되였으며 오늘까지 1500여년의 역사를 가졌고 초기에는 택심사라고 불렀으며 남조시기와 당나라시기에야 금산사라고 불렀다.절의 규모가 크고 번창할때는 3천여명의 중들이 있었으며 사원의 승려들은 수만명에 달하였다.청나라의 금산사와 보타사,문수사,대명사들은 중국의 4대명사원으로 이름났다.
금산사는 당시 황제들의 신앙이 다른것으로하여 두번에 거쳐 절을 관으로 고친적이 있다.처음은 당나라시기 금산사를 룡유관으로 고쳐 200년 세월이 흘렀고 두번째로는 송조정화4년때 휘종 조길봉도사에 의해 룡유관을 신소옥청만수궁(도사관)으로 고쳐져 천하제일 신소로 되였다.그후로 다시 룡유사로 복명되였다. 
      일반적으로 절간의 문은 남쪽으로 열려있지만 금산사의 문은 서쪽을 향했으며 여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전설에 의하면 원래는 금산사의 대문도 남쪽으로 향했었다고 한다.그런데 금산사가 여러번 불에 타게 되면서 출입구에서 자주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당시 금산사를 책임지던 중은 불안감에 휩쌓였고 이 일이 이상하게 느껴져 방랑하는중을 데려다 점을 쳐보았다.그 중은 사원의 주위를 한바퀴 돌고난 후 방장에게 이렇게 말했다.<<스님,이산에서 문이 남쪽을 향하면 직접 하늘의 남천문과 마주서게 되는데 그러면 옥황상제에게 죄를 짓는것이기에 반드시 방향을 고쳐야 합니다.>>방장은그 얘기를 듣고난 후 연속 손을 맛잡고 <<죄송합니다!>>를 말하면서 령을 내려 문을 서쪽으로 향하게 고치도록 하였다.
      전설은 전설인것 만큼 ,금산사문이 서쪽을 향한것은 사실 다른 원인이 있다. 역사전설은 전설일뿐 금산사 문이 서쪽을 향한것은 사실 다른 원인이 있다. 역사분석에 의하면 당시 건축사가 문을 서쪽으로 향하도록 한데는 다른 의도가 있었는데 원인인 즉 금산사는 양자강중심에 우뜩 솟아 유람객들이 서쪽을 향한 문을 통해 멀리까지 바라볼수 있으기에 도도한 대강물이 흘러가는것을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산은 서쪽에 서있노라”라는 시구와도 잘 어울린다.이것이 바로 건축사의 독특한 창조이다.
문을 통해 천왕전으로 오르면 가운데는 미륵보살을 모셨는데 사람들은 웃음 보살이라고 부른다.양옆에는 사대금강의 조각이 있으며 그 외형이 크고 생동하여 수문지기라는 뜻도 있다.사대금강은 사대천왕으로도 불리우는데 좌측은 동방치국천왕,남방증장천왕이 있고 우측은 북방광목천왕,서방다문천왕이 있다.
      미륵보살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젹혀 있다.
      많은 사연담은 큰 배,얼마나 많은 일을 해결하였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천하의 근심을 없애주노라
      천왕전 간판앞에는 한쌍의 사자가 있다.
      천왕전의 뒤쪽은 대웅보전이다.역사적으로 사원은 많이는 화재에 의해 파손되였는데 원래의 대웅보전도 1948년에 화재로 파손되였으며 모두 260여 채의 정,대,루,각,방들이 타버렸다.최근에 지방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자금을 모여 대웅보전을 다시 세웠으며 1988년에 고전의 면모을 갖추게 되였다.금산사 주치의 추억에 의하면 금산사 대웅전내의 불상들은 거대하였고 금빛을 뿌리고 향불이 끊기지 않았으며 제일 왕성한 시기에는 사원에 수천명의 승려들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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