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탑


    금산탑이라고도 불렀으며 1450여년전에 만들어 진것이고 탑 높이는 30미터에달한다.  당송시기 쌍탑이 있었는데 송나라에서는 “천자탑”,”천수탑”이라고 불렀다.1472년 일본화가 설조등양이 금산을 유람하고 <<대당양자강심금산용유선사도>>를 그렸는데 우에는 남북쪽에 있는 두 보탑이 있었다.쌍탑은 화재로 파괴되였고 무너진 후에 명나라시기 다시 건설되여 자수탑이라고 불렀다. 고대 각 국의 불교관습에 의하면 사원을 세울때 탑도 같이 세웠다.특히 크고 이름난 사원일수록 더욱 그러하다.청나라 함풍시기에 와서 이 탑은 또 파손되게 되였다.광서 20년에 금산사의 주지 은유는 이 탑을 지을것을 결심하고 청나라 정부에 호소하였으며 서태후는 자체 모금하여 짓도록 명령하였다. 그는 남북을 나들며 다니는 곳마다 탁발하고 여러곳에서 모금하다가 양강 총독 유곤일의 지지하에 5년에 거쳐 2만9천6백량을 모아 재건하였고 명칭은 그대로 자수탑이라고 불렀다. 이 탑은 절묘하고 청신하며,높이 솟아 있으며 금산의 봉우리에 우뜩 솟음으로써 금산을 높여 놓은것 처럼 금산전체와 금산사를 묘하게 결합해 놓았다. 탑은 벽돌과 나무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칠층팔면으로서 안에 선회식 계단을 설치하고 유람객들이 탑에 올라 굽어볼수 있도록 되여있다. 매층사면에 문이 있고 복도가 연결되여 있으며 면마다 풍경이 있어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장식해 준다. 유람객들은 탑 꼭대기에 올라 난간에 기대여 경치를 절감할수 있는데 동쪽을 보면 장강중심의 교산과 아슬아슬한 형식의 북고산, 남쪽을 바라보면 첨첨히 들어 앉은 봉우리들 , 서쪽에는 눈부신 물고기못과 도도한 흐름이 있는 대장강의 물결, 북쪽을 보면은 연기 자욱이 그윽한 고진 과주와 고성 양주가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하며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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