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일람


    금산 제일 높은곳에 돌 기둥으로 된 량정이 있고 그 이름은 유운정이며 강천일람 혹은 탐해정이라고 불렀다.정중심의 석비는 300년전 강희황제가 모친과 함께 대강 중심의 금산사에서 유람할때 남긴 고적인데 강희황제는 높이 올라 먼 곳을 바라보니 큰강이 동쪽으로  흐르고 ,바다와 하늘이 합쳐져 웅장함을 이루었다고 했다.그래서 “강천일람”이라는 글을 쓰게 되였다. 강희24년(1685)에 재수리를 하였고 동치10년(1871)에 복건되였으며 양강 총독 증국번이 강희가 쓴 “강천일람”을 석비에 새겨 정내에 세웠다.여기는 금산 자태를 느끼고 진강전성의 아름다운 경치를 굽어볼수 있는 제일 좋은 관상지의 하나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강희황제가 그 글을 쓸때 앞의“강천일”세글자는 순간에 써내려 갔지만 마지막 “람”자는 글자가 복잡하여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그러나 “창피하여 신하에게 묻지 못하고 입속으로만 “강천일람”을 거듭해서 부르자 주위 대신들은 그런 상황에서 황제가 어려움에 부닥쳤다는것을 알면서도 비록 한글자이지만 자칫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가바 차마 직접 알려드릴수가 없었다.이때 한 대신이 묘한 생각이 떠올라 황제앞에 덥석 엎드려 “신금견가”라고 소리쳤다.강희황제는 “신금견”이라는 소리를 듣고 글자가 문뜩 떠올라 그자리에서 써내려 갔다. 왜냐면 “람”자의 원자가 “신,금,견”세글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이다.그 대신은 묘하게 글자분리법을 이용하여 황제에에 일깨워줬다.또한 강희황제가 너무 오래동안 망설이다 쓴 글이여서 “람”자는 특별히 얇고 작게 씌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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