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박묘


    금산의 서탑아래 천연기석들이 있는데 예로부터 석배(해)산이라 하기도 하고 은건도라고도 불리웠다. 섬에는 동금시기 저명한 문학가이며 훈고학자 곽박의 유물이 묻혀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곽박묘라고 불렀다. 곽박(기원276—324),하동(지금의 산서성) 문희사람이며 박식하고 재간있어 동금의 수재라고 불리웠다.그는<<아야주>>,<<아야도>>,<<아야도찬>>,<<산해경주>>,<<목천자전주>>,<<초사주>>,<<장경>> 등의 책을 썼으며 동시에 음양무도술도 정통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어느날 명나라의 일본사신 중심소가 금산에 왔다가 곽박묘를 보고 시 한수를 썼다.시운“유체는 큰 문에 잠겨져 있고, 지금은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으니,물밑에 천행일월이 있으나 묘앞에 찾아오는 자손이 없네”
    곽박는 폭군 왕곽의 금조황위 탈취를 반대하여 싸우다 무창 남강에서 살해되였다. 명만역33년 암행어사 황길사가 묘비를 세우도록 했으며 그 위에 “금증홍농태수 곽박의 묘”라고 새겨놓았다.그러나 남송의 육유는 <<인속기>>에서 곽보묘가 진강에 없다고 증명하였고 곽박을 일일히 헤아릴수 없다고 여겼다.후손들도 이 설을 인용하여 묘의 위치는 부정되였다.사실상 역사와 전설은 공존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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